가장 이해 안되는 말이 있었습니다.
호상(好喪)
죽음 앞에 좋아 할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런 말이 있는지..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감에
호상이라는 단어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례식장 납품 오갈 때,
수의를 입혀드리는 입관실에 울음소리의 크기가
호상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게 해줬습니다.
어떤 집은 장례식장이 떠나가라 모든 형제, 손자들이 펑펑 울고
어떤 집은 흐느끼는 소리만 작게 날 뿐 입니다.
효심과 사랑이 크고 작아서가 아니라
효심과 사랑을 표현한 시간이 짧고 길어서 라는 걸
장례지도사님께 전해 들었습니다.
어떤 집은 갑작스레 자식들 곁을 떠나가서
사랑을 표현할 시간이 적어서
3일 동안 슬픔을 표현하느라 소리가 크고
어떤 집은 몇 년간 중환자실, 요양병원을 오가며
자식들의 마음 애닳게 하고 떠나셔서
슬픔을 수백수천개로 나눠 몇 년을 하나씩
마음에 녹이며 지냈기에
3일장 동안 덜어낼 슬픔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수 백번 장례식을 치뤘겠지요.)
저희 할머니도 요양병원에 계신지 5년이 넘었습니다.
작은아버지께서
'이제 돌아가셔도 호상이지' 라는 말이
처음에는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병문안을 가도
가장 좋아하시던 손자를 알아보지 못 하는 모습과
이제는 식사도 입이 아니라
영양죽을 연결된 호스로 코 하시는 모습이
몇 년 전 작은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제는 '호상'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평생을 열심히 살아오시다
외딴 도시에 딱딱한 병원에서
환자복 입고 돌아 가실 할머니...